발길 따라, 구름 따라 3(봉화 승부역->비룡계곡)
일시: 2010년 4월 3일(토)
코스: 봉화 승부역->비룡계곡
처음 승부역에 내렸을 때 갑자기 어느 외딴 무인도에 홀로 표류된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쓸쓸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아름다움과 고요함이 주변 경치와 어울려 따스하게 다가왔다. 봉화의 오지 승부역에 드디어 온 것이다.
오지 기차 여행의 묘미는 창가를 통해 전해오는 자연의 아름다움 일 것이다. 그래서 택한 코스가 바로 비룡산 자락 비룡계곡을 품고 있는 승부역 이었다.
부산의 부전역, 어딘지 모르게 서민 냄새가 풍기는 정겨운 역이다. KTX는 아예 다니지도 않는다. 새마을호가 있긴 하지만 부산역에 비하면 게임이 되질 않는다. 주로 서민들이 자주 애용하는 무궁화호가 전국 각지를 누빈다. 서울의 청량리를 가는 열차, 바다를 끼고 포항으로 달리는 동해남부선, 경북 북부와 강원도 동해 강릉을 가는 영동선과 동해북부선, 그리고 진주를 거쳐 순천, 목포방향으로 가는 경전선이 다 이곳 부전역에서 출발한다.
난 하루에 한번 오전 9시 15분에 떠나는 강릉행 무궁화 제1682열차를 탔다. 물론 승부역에서 내릴 것이다. 승부역 도착 시간은 15:00이었다. 요금은 21,600원. 오지 티켓을 드디어 손에 잡은 것이다.
자가용 시대라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객실 안이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내 어릴 적 기억 속에 만원기차를 타고 소풍가면서 차 안에서 먹었던 삶은 계란과 00사이다 생각이 저절로 났다. 요즘의 기차여행은 아마 그 시절의 낭만을 느끼기 위해서 일부러 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내가 탄 무궁화 열차에 변한게 있다면 통로를 왔다갔다 하며 물건을 팔던 홍익회 사람들이 안 보이고 미니카페가 생겨 자판기를 통해 물건을 직접 사야 하는 것이었다.
날 태운 기차는 숨을 몰아쉬며 울산, 경주를 거쳐 안동을 지나 영주역에 도착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까지 날 태워준 선두 기관차는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전기기관차로 교체 되는 것이었다. 오르막이 많은 영동선은 전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현동천이라고 하는 낙동강 상류지역을 끼고 도는 기차는 차창을 통해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특히 봉화의 현동역에서 승부역에 이르는 낙동강변의 맑은 계류와 소, 암반 등 자연 그대로의 풍광에 난 취해버리고 말았다. 경치는 나의 오른쪽 창을 통해 들어와 왼쪽 창으로 나갔다.
승부역은 해발고지가 약 700-800M 로 뒤는 산으로 막혀있고 앞은 낙동강이 흐르는 그야말로 오지 중 오지였다. 역사를 지키는 승무원은 단 한분이고 역사 옆 화장실은 소변기가 하나, 대변기가 하나 있는 남녀공용화장실이었다. 주변을 예쁘게 꾸민 흔적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대합실과 우체통이 너무 맘에 들었다.
주변 볼거리가 너무 많아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빨리 비룡계곡을 보고 싶었다. 승부역 앞에 있는 이정표를 보고 낙동강을 건너 비룡계곡으로 접어들었다. 비룡산 까지 갈 예정인데 너무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었다.
비룡산은 해발 1129M. 승부역이 약 700M이니 400M만 오르면 된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자연을 두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 되고 말았다. 먼저 걱정 되는 건 강릉 발 동대구행 오후 6시 15분 무궁화호를 타야하기 때문이었다. 그걸 놓치면 오지속의 미아로 남아야 하고 한참을 걸어나가 승부리나 석포역에서 민박을 해야만 하는 실정이라 당일로 부산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맨 처음 느낀 비룡산 계곡은 무서웠다. 알 수 없는 야릇한 공포심이 밀려왔다. 겁이 많은 나는 별 생각이 다 났다. 등산용 스틱을 길게 뽑아 만일에 사태(?)에 대비했다. 소방울도 달고 헛기침도 내면서 전진해 갔다. 야생동물로 하여금 내가 여기 있으니 놀라지 말고 다른곳으로 가라는 일종의 사인을 보내는 것이었다.
비룡계곡은 가꾸지 않은 글자그대로의 자연이었다. 너무나 맑아 내 자신을 비추면 바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깨끗했다. 물가에는 자연의 힘에 의해 쓰러진 오래된 고목과 잡목들이 뒤엉키고 칡넝쿨이 나무들을 감아 올라 하늘로 솟구쳤다. 무서운 마음이 더 들어 중간쯤에서 돌아와야만 했다.
다시 승부역 으로 돌아 온 나는 이번에는 오히려 시간적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주변 볼거리 탐색에 나섰다. 먼저 열차표를 미리 구해 놀려고 역사를 찾아가니 처음 도착했을 때에 뵙던 직원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그분 하시는 말씀이 기차가 도착하면 객실 안에서 승무원에게 직접 행선지를 말하고 표를 끊으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원래 승부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조그만 간이역이었다. 그러나 환상선 눈꽃열차가 겨울철에 운행되면서부터 관광객이 축제 기간에 찾아와 알려지면서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승부역은 매우 운치있고 아름답고 깨끗한 느낌을 받았다. 찾아오는 사람이 겨울철 외에는 없지만 혹시나 손님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군데군데 베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영암선개통기념비(영주-철암), 낙동강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흔들다리, 승부역 철교와 터널, 승부역 관사도 구경거리다. 역 구내에는 예쁜 대합실이 있고 우체통도 있어 여행중에 사연을 적어 친구나 부모, 연인에게 띄울 수도 있다. 나도 고객의 소리라는 엽서를 통해 승부역의 아름다움과 깨끗함, 손님을 맞이하는 친절한 모습들을 적어 예쁜 우체통에 넣었다.
수고하시는 역무원 분에게 음료수 한 병과 함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난 동대구행 기차에 올랐다. 다시 부산으로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올 때와는 다르게 갈 때에는 부산으로 바로 가는 열차가 없어서 동대구역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객차승무원에게 행선지를 말하니 친절하게 표를 끊어주셨다.
피곤함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한 참을 잔 후 깨어보니 어느 새 동대구역에 다 와 가고 있었다. 부산행 환승시간이 10시 45분, 청도, 밀양을 거쳐 부산역에 돌아오니 00시 16분이었다. 기차를 탄 시간만 11시간 30분 걸렸다. 아마 나의 기차여행 최고 기록인 것 같다.
택시 기사분이 내 등산 차림을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어딜 다녀오시는데 이리 늦게 오셨습니까?” 난 이렇게 대답했다. “기사님? 봉화 비룡산의 비룡계곡 아세요? 승부역 있는 오지마을이거든요.”
“아이고! 그 먼 곳을 당일치기로요?”
기사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당일치기로는 정말 어렵고 힘든 하루 일정이었지만 마음 속 따스한 자아를 발견하고 온 것 같았다. 다시 한번 기회가 생기면 못 가본 비룡산 정상을 가고 싶다.
부산->강릉간 무궁화호입니다. 오늘의 제 애마죠.
미니카페입니다. 귀엽죠?
승부역에 도착한 나의 애마입니다. 수고했다 애마야~!
승부역 전경입니다.
귀여운 우체통.
비룡산 가는 이정표입니다.
낙동강 상류입니다.
용관바위
비룡계곡.
너무나 맑은 비룡계곡수입니다.
폭포
토담집
플랫홈 대합실.
내부.
시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