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따라, 구름따라 143(부산 장자산과 이기대 해파랑길)
발길따라, 구름따라 143(부산 장자산과 이기대 해파랑길)
일시: 2013년 2월 24일(일)
코스: 동생말->백련사->장자산->오륙도->농바위->동생말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명소라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부산의 대표적 명소가 태종대라면 이를 서러워 할 정도로 아름다운 해변을 가진 명소가 부산에는 수두룩하다. 이기대 역시 태종대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해변과 산을 간직한 곳이다.
이제는 너무나 알려져 주말이면 걷기 열풍을 따라 경향각지에서 몰려들어 그 아름다움이 조금은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용호동 동생말에서 시작하는 해변 산책로는 오륙도까지 이어지는데 그 길이만 해도 약 4km에 이른다. 이른바 해파랑길 이다.
또한 해변 길 위로는 장자산 장군봉이 자리해 해변 산책과 함께 산행의 묘미까지 누릴 수 있다. 산책로 주변에는 해녀움막, 동굴, 구리 광산터, 공룡발자국 등 여러 가지 즐길 수 있는 눈요기들도 많다.
여러 가지 볼 것 중에 꼭 추천하고자 하는 곳을 고르라면 난 농바위를 서슴없이 택할 것 같다. 망망대해 바다를 바라보며 고기잡이 나간 신랑, 또는 자식을 기다리는 어느 노파의 간절한 기도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기대 안내(부산 남구청)
장산봉이 바다로 면한 동쪽 바닷가에 있는 대(臺)로 용호3동에 속한다. 용호하수처리장에서 고개 하나 넘은 곳에 있다. 장산봉(225.3m)이 바다로 면한 동쪽은 기기묘묘의 바위절벽으로 경관이 뛰어났지만 사람들이 오가기 위험하다. 그래서 바다서 배로 그 경관을 즐긴다.
그러나 이기대 중심자리는 직각으로 된 절벽이 아니라 바다에 접한 암반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평면에 가깝게 된 곳이 산을 따라 2km정도 바닷가로 이어져 있다. 그 바위반석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경관과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는 경관이 빼어났을 뿐 아니라 낚시꾼의 낚시터로 아주 좋은 곳이다. 그 동안 군작전지구가 되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1993년에야 개방 되었다.
이기대라는 명칭의 유래는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다음 3가지 설로 요약된다.
첫째는 조선시대 좌수영의 역사와 지리를 소개한 동래영지(東來營地-1850년 좌수사 李亨夏 편찬)에서 이기대라고 적고 있고 좌수영에서 남쪽으로 15리에 있으며 위에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서 이기대라고 말한다고 할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在營南十五里 上有 二妓臺云).
둘째는 경상좌수사가 두 기생을 데리고 놀아서 이기대라고 하였다는 말도 있으나 옛날 큰 벼슬을 한 관리들은 가는 곳마다 기생놀이를 했고 그래서 이기대라고 했다는데 근거 없는 말이 아닐 수는 없으나 천민에 속했던 두 기생의 무덤이 있다고 경관이 빼어난 곳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도 일반적인 견해이다
셋째는 수영의 향토사학자 최한복(崔漢福 : 1895∼1968)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는 부근의 경치 좋은 곳에서 축하잔치를 열었는데 그 때 수영의 의로운 기녀가 자청해서 잔치에 참가하여 왜장에게 술을 잔뜩 권하여 술에 취하게 한 후 왜장을 안고 물 속에 떨어져 죽었다는 것인데 그래서 二妓臺가 아닌 義妓臺가 맞는 이름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그런데 이기대(二妓臺)의 명칭은 공부(公簿)라고 할 수 있는 東來營地에서 이미 150여년 전에 종전의 기록을 근거로 二妓臺라고 하였으니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이기대 해안의 절벽에는 지나가는 배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듯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는 돌부처상의 바위가 있다. 요즘은 이기대에 공룡이 지나간 발자국 흔적이 있다하여 남구청에서 이기대 일대를 정비하여 공원으로 만들면서 이기대 어울마당과 공룡 모형도 놓아두어 시민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동생말에서 찍은 해운대 일대
백련사에서 찍은 광안대교
이기대 바다
오륙도 전망대
농바위 할머니